밤은 얼마나 멀리
새로 온 사람
밤은 얼마나 멀리
너에게 달려가서 갈 수 없는 곳을 부르자 it’s night
아침식사를 뭐라고 부르나요?
아침은 깊고 어두운 밤에 발을 담그고 당신에게 달려가는 곳입니다.
몇 개의 산을 넘어
메마른 계곡물을 쓰다듬으며 갈증을 달래며 조깅하는 곳
밤도 아침도 아닌 눈 덮인 길
안개 속에 갇혀 있어도 니가 있는 곳은 멀고도 멀어
이 세상을 추월하고 있습니까?
당신은 어떤 세계를 초월합니까?
당신은 단지 나에게 존재의 신비가 되고 싶습니까?
다시 날아가
날개가 찢어지는 순간으로 가겠다는 의지가 내 맘을 또 바꿔
새벽이 어디까지인지 내 발에서 떨어지는 어둠의 가루
저녁이라고 하셨습니까, 아니면 새벽이라고 하셨습니까?
아침과 밤, 새벽과 황혼이 만나 날아가는 순간을 만들어
그 순간 당신은 빛 속으로 뛰어들어 티끌 하나 없이 사라졌습니다.
당신은 어디에나 있습니다
나는 어디에도 머문 적이 없다고 쓴다
언젠가 내가 먼지가 되어 공중에 흩어지면
나는 당신을 거기에서 만나고 싶다
그러면 아침이 올까 이 순간이 별이 빛나는 밤이 될까
나 혼자 걷는 이 길에
아침도 밤도 없어 이 시간을 던져 이 줄을 잡아
넌 갈 곳이 없어
– 『시와 세계』, 2022년 겨울호(전문)
본질로 돌아가 생명의 겟세마네 동산에서(발췌) _김윤정/ 강릉원주대학교 문학평론가 교수
시에서 구원은 이처럼 모호한 것으로 제시되지만, 이러한 인정은 역설적으로 구원의 절대성을 보여준다.
절대자는 사람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지상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같다.
마찬가지로 구원은 그것 없이는 살 수 없지만 또한 얻을 수 없는 아이러니한 것입니다.
손에 쥐면 흘러가는 모래처럼 머물 수 없다는 비유를 얻는다.
이러한 상황 때문에 화자는 죽음의 상황을 회상한다.
주관적인 상태가 “언젠가 허공에 흩어지면”처럼 “아침”이든 “별이 빛나는 밤”이든 완전히 다른 상태가 될 때 구원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.
인간은 인간의 삶의 조건에서 벗어나 절대적이고 비인간적인 구원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는가?
질문으로 시작해 또 다른 질문으로 끝나는 그의 시는 인간의 극단과 구원에 대한 관능적이고 집요한 성찰의 태도를 보여준다.
누구도 정답을 알 수 없지만, 답을 찾기 위해 헤매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을 시는 말하고 있다.
내레이터의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사람들이 처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서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.
예수께서 “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?”. (시 190-191 참조/ 론 193-194)
——————–—-
* “아티스트』 2023년 봄(52)어떻게 ~ 안에
* 김윤정/ 2007년 『비젼리얼리티』로 데뷔, 책 『위상학의 시학』 『21세기 한국 시의 표현』 등